선조들의 정신과 숨결이 깃든 그릇, 유기 유기는 7세기경 페르시아와 이란 등지에서 발달한 유기 제작 기술이 신라로 유입된 것을 시작으로, 우리나라 특유의 담금질 기법을 통해 그 활용도가 확장되면서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생활 용구로써 폭넓게 쓰였습니다. 주석과 살균 효과가 있는 구리를 22%와 78%의 비율로 합금하여 제작하는 유기는 탁월한 보온/보랭 효과와 함께, 음식에 조금이라도 독성이 있으면 검게 변하는 특성이 있어 '생명의 그릇'으로도 불렸습니다.

세상에 없던 유기 커트러리, 라륀 지금까지 국내에는 유기 나이프가 없었습니다. 문화유산인 유기를 전통적인 형태를 벗어나 제작하는 것에 대해 누구도 쉽게 도전하려 하지 않았지요. 한국 리빙 디자인의 대중화에 앞장서기 위해 진행한 서울번드(和) 프로젝트의 하나인 라륀은 이렇게 시작부터가 난항이었어요. 하지만 40년이라는 시간 동안 유기의 전통성과 우수성을 널리 알려 오신 안성맞춤 유기 명장 1호, 이종오 명장만큼은 서울번드(和) 프로젝트에 공감해 주셨습니다. 전통을 지킨다는 것은 박물관에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인의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사용돼야지 제대로 지켜지는 것이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라륀이 탄생하였습니다.

라륀의 제작 과정은 먼저 틀과 모래를 이용해 사형을 만드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그 위로 구리와 주석을 섞어 녹인 것을 부은 다음, 다시 그 틀을 부숴 사포로 가공해 다듬으며 이 모든 작업 과정은 이종오 명장의 손으로 직접 이루어집니다. 하루 6시간 동안 뜨거운 불 앞에서 온몸이 흠뻑 젖도록 땀을 흘리며 만드는 라륀은 고작 30개. 그 중, 제작 과정에서 절반은 이종오 명장의 엄격한 기준에 인정되지 않아 폐기되니, 정성과 시간이 필요한 작업일 수밖에 없지요.